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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세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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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근세 문학사는 에도 시대를 중심으로 소설, 시가, 한시문, 극문학, 가요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과 그 흐름을 다룬다. 소설은 가나조시, 우키요조시, 요미혼, 닌조본, 기뵤시, 고칸 등으로 발전했으며, 특히 이하라 사이카쿠의 우키요조시가 큰 영향을 미쳤다. 시가는 와카, 하이카이, 교카, 센류 등으로 나뉘며, 와카는 고전 연구의 영향을 받아 개성적인 가풍을 추구했다. 극문학은 가부키와 조루리가 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발전했고, 한시문은 중국 고전 양식을 모방하는 경향을 보였다. 근세 문학 연구자들은 각 장르별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2. 근세 소설

급속히 발달된 인쇄 기술은 소설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서적을 넓은 계층에 보급시켰다. 가나조시는 순수한 소설은 아니었으나 서민의 체취를 담기 시작한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1]

중기에 이르러 문화의 중심이 에도로 옮겨지면서, 샤레본[4], 요미혼[5], 닌조본[6], 기뵤시, 고칸 등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 시대 변천에 따라 나타났다. 우키요조시는 서민의 생태를 여실히 그린 소설로, 작가의 독자적인 안목으로 개성적인 문학성을 보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업자본과 위정자, 독자와 영합하여 안이하고 지성(知性)이 없는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1]

1682년(덴와 2년), 이하라 사이카쿠가 『호색일대남』을 간행하여 우키요조시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1] 호조 단스이, 니시자와 잇푸, 미야코노 니시키, 에지마 키세키 등이 우키요조시 작가로 활동했다.[1]

2. 1. 가나조시

급속히 발달된 인쇄 기술은 소설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친 서적을 넓은 계층에 보급시켰다. 현재 가나조시라고 불리는 잡다한 서적은 순수한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서민의 체취를 담기 시작한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근세 초기의 소설로 가나조시가 탄생했다.[1]

2. 2. 우키요조시

1682년(덴와 2년), 이하라 사이카쿠가 『호색일대남』을 간행하여, 새롭게 우키요조시라는 장르가 탄생했다.[1] 호조 단스이, 니시자와 잇푸, 미야코노 니시키, 에지마 키세키와 같은 인물들이 작품을 남겼다.[1] 우키요조시는 서민의 생태를 여실히 그린 소설로, 작가의 독자적인 안목으로 개성적인 문학성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업자본과 위정자, 독자와 영합하여 안이하고 지성(知性)이 없는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2. 3. 요미혼, 닌조본, 기뵤시, 고칸

문화의 중심이 에도로 옮겨지면서, 소설류도 새로운 형식의 것들이 시대 변화에 따라 나타났다. 샤레본[4], 요미혼[5], 닌죠본[6], 기뵤시, 고칸 등이 그것이다. 서민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린 우키요조시에서는 작가의 독창적인 시각이 돋보여 독보적인 문학성을 엿볼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들이 상업 자본, 위정자, 독자에게 영합하여 안이하고 지성이 부족한 작품을 쓰게 되었다.

3. 근세 시가

근세 시가는 와카, 하이카이, 교카(狂歌), 센류(川柳)로 나눌 수 있다. 와카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모색했고, 하이카이는 독자적인 미학을 확립하며 발전했다. 반면 교카와 센류는 오락적 성격이 강해 문학적 깊이는 부족했지만, 서민 문화의 한 축을 담당했다.

}, 笈の小文|오이노 코부미|일본어), 무카이 교라이 (去来抄|교라이쇼|일본어), 요사 부손 (新花摘|신화적|일본어)

|-

| 교카(狂歌), 센류(川柳)

| 실용성, 오락성, 골계, 비속, 풍자

| 誹風柳多留|비풍 류다루|일본어 (에가라이다 야나기), 萬載狂歌集|만재광가집|일본어 (시카타 아카라・슈라쿠 간에이 공편)

|}

각 갈래별 상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을 참조할 수 있다.

3. 1. 와카

근세의 와카는 초기에는 보수적이고 지식계층의 것이었으나, 17세기 말엽 이후 국학자들의 고전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일반 서민층에까지 확산되었다.

근세 와카의 특징은 고전 연구에서 발전한 점과 종래의 보수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개성적이고 인간적인 가풍(歌風)을 노래하려는 데에 있다. 예를 들면, 같은 고전을 연구했으나 가모 마부치는 만요풍(萬葉風), 가다 아리마로·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신고킨풍(新古今風), 오자와 로안·카가와 가게키는 고킨풍(古今風)을, 가토 지카게·무라다 하루미는 고킨과 신고킨의 절충적인 가풍을 노래했다. 말하자면 고풍스러운 정신을 부흥시킴과 동시에 그 속에서 진실한 자기 노래를 읊으려고 했다. 또한 가인(歌人)으로서 자각을 가지고 어느 가풍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가풍을 수립한 다지바나 아케미, 오오쿠마 고토미치, 료칸 등이 배출된 것도 이 시대의 특색이다.

이와 같이 전대에 비해서 폭넓은 발전을 보였으나 근세에 발생한 하이카이(俳諧)나 교카(狂歌)보다는 우아하고 고상한 것이었고, 이를 익히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식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서민에게는 인연이 먼 것이었다.

3. 2. 하이카이

와카를 제외한 하이카이, 교카(狂歌), 센류(川柳)를 대상으로 한다.

근세에는 한시문(漢詩文), 와카(和歌), 렌가(連歌) 등의 전통적인 제1문예에 비해, 하이카이, 교카(狂歌), 센류(川柳)와 같은 제2문예는 때때로 실용성과 오락성에 치중되었다. 또한 제1문예에서는 볼 수 없는 골계, 비속(卑俗), 풍자 등의 성격이 나타났다. 초기 하이카이인 데이몬하이카이(貞門俳諧)에서 하이곤(俳言)을 사용한 것은 전통문예에서는 볼 수 없는 한어(漢語), 속어에 의한 익살미를 꾀한 것이다. 교시(狂詩)에서 전통 한시문에서 볼 수 없는 방어(邦語)를 섞고 제재 면에서 비속성을 보인 것이나, 교카(狂歌)나 센류(川柳)에서 보이는 특성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근세의 시가가 단순히 실용성과 오락성에만 치중한 것은 아니다. 하이카이에서는 마쓰오 바쇼의 노력이 계승되어 독자적인 미가 확립되었다. 이에 비해 교카(狂歌), 교시(狂詩), 센류(川柳)에서는 경묘(輕妙), 풍자, 폭로(暴露) 등의 근세적인 성격은 갖추고 있지만, 하이카이에서와 같은 문학으로서의 자각 운동은 일어나지 못하고 놀이로서 일관했다. 결국 센류(川柳)는 교쿠(狂句)로 타락하였고, 교카(狂歌)와 교시(狂詩)도 거의 사라졌으며, 하이카이만이 하이쿠(俳句)로서 재생하였다.

3. 3. 교카, 센류

와카를 제외한 하이카이, 교카, 센류를 대상으로 한다.

근세에는 한시문, 와카, 렌카 등 전통적인 분야인 제1문예에 비해 이러한 제2문예는 실용성과 오락성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제1문예에서는 볼 수 없는 골계, 비속, 풍자 등의 성격이 나타났다. 초기 하이카이인 데이몬하이카이에서의 하이곤(俳言) 사용은 전통문예에서는 볼 수 없는 한어, 속어에 의한 익살을 추구한 것이다. 교시(狂詩)에서 전통 한시문에 없는 방어(邦語)를 섞고 제재 면에서 비속성을 보인 것이나, 교카, 센류에서 보이는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근세의 시가가 단순히 실용성과 오락성에만 치중한 것은 아니다. 하이카이에서는 마쓰오 바쇼의 노력이 계승되어 독자적인 미가 확립되었다. 이에 비해 교카, 교시, 센류에서는 경묘, 풍자, 폭로 등의 근세적인 성격은 갖추고 있지만, 하이카이에서와 같은 문학으로서의 자각 운동은 일어나지 못하고 놀이로서 일관했다. 결국 센류는 교쿠(狂句)로 타락하였고, 교카, 교시는 거의 절멸하고 하이카이만이 하이쿠로서 재생하였다.

  • 1765년 『비풍 류다루』 에가라이다 야나기 / 센류
  • 1783년 『만재광가집』 시카타 아카라・슈라쿠 간에이 공편 / 광가

4. 근세 한시문

근세의 한시문은 일정 범위의 시민 사회에까지 침투하여 양적으로 확대되었으나, 질적인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근세 한시문은 중국 고전 양식 문학으로 간주하면 중국어의 리듬과 악센트를 모방하는 경향이 강하고 개성이 부족했다. 그러나 훈독을 전제로 한 일본 문학의 한 분파로 생각하면, 오랫동안 고전학의 역사에 의해 연마된 지성과 미감(美感)과 함께 훈독체(訓讀體)라는 일종의 시원한 리듬을 가진 특수 문예 양식으로 발전하여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근세 한시문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주요 연구자로는 이케자와 이치로가 있다.

일본 문학 연구자도 참조.

5. 근세 극문학

근세에는 노오, 교겐, 무곡 등의 연극이 행해졌으나 창조력이 고갈되었다. 반면 가부키조루리는 서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두 연극의 영향으로 도키와즈, 도미모토, 기요모토, 나가우타 등의 극장 가요도 생겨났으며, 이들 역시 넓은 의미에서 극문학에 포함된다.

5. 1. 가부키

근세 이전의 노오, 교겐, 무곡 등의 연극도 행해졌으나 이미 창조력이 고갈되었고, 가부키는 서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5. 2. 조루리

근세 이전의 노오, 교겐, 무곡 등의 연극도 행해졌으나 이미 창조력이 고갈되었고, 가부키조루리가 서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양자에 촉발되어 생긴 도키와즈, 도미모토, 기요모토, 나가우타 등의 극장 가요도 넓은 의미로 극문학에 포함된다.

6. 근세 가요

중세 말기 류큐 왕국에서 수입된 샤미센가부키오도리·조루리·유리가의 반주 악기가 되어 근세의 악기를 대표하며, 샤미센 음악을 반주하는 가요가 서민의 환락장으로서의 유곽과 극장에서 성장했다.

7. 근세 문학 연구자

근세의 와카는 초기에는 보수적이고 지식 계층의 것이었으나, 17세기 말엽 이후 국학자들의 고전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일반 서민층에도 퍼졌다.

근세 와카는 고전 연구에서 발전하고, 기존의 보수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개성적이고 인간적인 가풍(歌風)을 노래하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가모 마부치는 만요풍(萬葉風), 가다 아리마로·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신고킨풍(新古今風), 오자와 로안·카가와 가게키는 고킨풍(古今風), 가토 지카게·무라다 하루미는 고킨과 신고킨의 절충적인 가풍을 노래하는 등, 고풍한 정신을 부흥시키면서도 자신의 진솔한 노래를 읊으려 했다. 또한, 다지바나 아케미, 오오쿠마 고토미치, 료칸 등은 가인(歌人)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특정 가풍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가풍을 수립하여 이 시대의 특색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근세 와카는 전대에 비해 폭넓게 발전했지만, 하이카이(俳諧)나 교카(狂歌)보다는 우아하고 고상하며 익히기 위해 상당한 지식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서민에게는 친숙하지 않았다.

참조

[1] 서적 日本古典文学大辞典第2巻 岩波書店 1984-01
[2] 웹사이트 平成29年度水曜講座 http://pr.kokugakuin[...] 2021-11-23
[3] 웹사이트 日本近世文学会(学会名鑑) https://gakkai.jst.g[...] 2021-11-23
[4] 문서 유곽 생활을 소재로 한 소설 및 교분
[5] 문서 에도 중기 소설: 요미혼
[6] 문서 닌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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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특징주요 작가 및 작품
와카전통 계승, 개성적/인간적 가풍 추구가모 마부치(만요풍), 가다 아리마로, 모토오리 노리나가(신고킨풍), 오자와 로안, 카가와 가게키(고킨풍), 가토 지카게, 무라다 하루미(고킨+신고킨), 다지바나 아케미, 오오쿠마 고토미치, 료칸
하이카이독자적 미학 확립, 마쓰오 바쇼 영향마쓰오 바쇼 ({{lang|ja|奥の細道|오쿠노 호소미치|}